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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한해는 정말 너무 힘든 한 해였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작년처럼 힘든 적이 없었습니다.
평소 저는 건강하나는 자신 있었습니다.
1년에 감기한번 걸리지 않았고, 아무리 피곤해도 다음날이 되면 몸이 가벼워지곤 했으니까요.
그렇게 건강에 자신있던 저는 그 흔한 보험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 이렇게 건강한데, 보험은 무슨 보험이야”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턴가 피로가 잘 풀리지 않고, 한쪽 어깨가 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중, 가슴 밑 부분에 뭔가 혹 같은게 만져지길래, 가까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가까이 사시는 시어머님께서 저희 집엘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감기가 잘 낫질 않아서 혹시나 싶어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오시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차마, 저도 검사를 받았다는 말씀을 드릴수가 없어, 제 얘기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평온하게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따르릉” 울리는 전화벨소리...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밀려들었습니다.
뭔지 모를 불안감을 안은 채 전화 수화기를 들었는데, 아버님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이 하시는 말씀이 “ 네 엄마가 폐암 말기란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 가족은 눈물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한평생 남한테 손해 한번 안 끼치시고, 동네 궂은일은 다하시며 사신분이신데...이제 나이 예순다섯에 그런 몹쓸 병에 걸렸는지, 도저히 받아 들일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저희 시어머님은 20여년 동안 시외할머님을 모셨습니다.
외삼촌들이 계셨지만, 다들 부모 모시기 싫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저희 어머님께서 모시다가 작년에 외할머님 연세 88세에 돌아가시고, 이제, 한시름 놓고 편히 사실만 하니 병에 걸리셨으니, 저희 가족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조차 없었습니다.
동네 병원에서 검사자료를 주면서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으라고 하길래, 어머님은 예전에 한번 가봤는데, 좋으셨다며 카톨릭병원으로 가시길 원하셔서 모시고 가게 되었습니다.
카톨릭병원에 가서 초진 검사결과지와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의사선생님 말씀이
암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마치 저승에라도 갔다 살아 온 것처럼 기쁘고, 흥분 되었습니다.
그런데, 폐결핵 같은데, 물이 찼으니, 일주일 후에 물을 빼기 위해 입원 예약을 하고 가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너무 기뻐서 온 가족이 모여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렇게 흥분돼 있는데, 일은 또 다른 곳에서 터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며칠 전 검사해 두었던 제가 유방암이라는 믿지 못할 결과를 통보 받았습니다.
일순간에 집안은 다시 침체되었고, 모두들 저를 위로하느라 애를 썼습니다.
저희 어머님께서도 당신은 이제 괜찮으니, 네 몸이나 걱정하라시며 연일 전화를 하셨습니다.
저는 바로 영남대학교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수술을 하고, 누워있는데, 이번에는 어머님께서 물을 빼기 위해 카톨릭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카톨릭병원과 영남대병원을 오가며, 두 사람 병간호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유방암 초기라서 수술을 하면, 좋아질 것 같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마음을 다잡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다시 저희 가족을 슬픔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바로, 어머님께서 입원하셔서 여러 가지 검사를 다시 한 결과, 맨 처음 동네병원에서 진단한 대로 폐암말기 판정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동안, 폐결핵이라며 안도하던 저희 가족은 아연실색했고, 특히 저희 시아버님은 처음에 폐결핵이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폐암이라니...믿을 수가 없고, 병원 측에 섭섭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아버님께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얘기였으니, 너무 섭섭해 하시지 마시라고, 아버님을 설득시켜드렸습니다.
그렇게, 저희 집은 졸지에 암 환자가 2명이나 생기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이 “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라고 하더군요.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습니까?
한 집안에 똑같은 시기에 2명이나 암 판정을 받고, 두 병원에 나란히 입원을 하는 일 말입니다.
밤마다 남편은 제 병실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목 놓아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퇴원을 했고, 어머님도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쪽 집에 환자를 눕혀놓고, 남편은 회사도 휴직한 채 두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힘들고 지쳤지만, 꿋꿋이 해 내더군요.
병원에서 저희 어머님은 작년 12월을 넘기기 힘들지도 모를 거라고 했습니다.
저희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저와 어머님은 아침마다 만나서 운동을 함께 하고, 점심도 같이 먹고, 저녁도 함께 먹으며, 식이요법을 병행했습니다.
한집안에 두 명이 환자인 것이 큰 불행일수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둘이 함께 헤쳐나갈 수 있어 힘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저와 어머님은 둘이 손잡고, 운동을 했고, 몸에 좋다는 민간요법이 있으면, 함께 만들어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어머님은 제가 운동을 열심히 하고, 약 꼬박꼬박 먹으면서 점차 회복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님도 용기가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제 몸 추스르기도 힘들었지만, 어머님께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병원 검진일이 되면 꼭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엘 가곤 했습니다.
다행히 저희가 다니고 있는 대구 카톨릭 대학병원은 참 자상하게 환자의 마음을 읽어주듯 진료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 여유로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환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맙고, 감한 일이지요..
저희 어머님께서는 지난번 진료를 마치고 나오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 내가 비록 몹쓸 병에는 걸렸지만, 복은 있는 것 같다” 하셔서 “ 왜요? 어머니”하고 물었더니..
“봐라 저렇게 자상한 선생님이 내 담당 의사 아니냐? 내가 평생 동안 병원 많이 다녀 봤지만, 이 처럼 친절한 병원은 처음이다”하시더군요.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병원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처음, 병원에서는 작년 12월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하더니, 이번 검진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진행이 훨씬 늦게 되고 있다며 앞으로 6개월 정도는 더 사실 것 같다고 했습니다.
모든 병이 그렇듯...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조바심하기 보다는 반드시 이겨 낼 수 있다는 정신력이 오늘의 우리 어머님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처럼 식이요법하고, 운동 열심히 하면 완치는 아니어도, 상당기간 수명연장을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암 극복은 꼭 의술뿐 아니라, 환자 본인의 마음가짐도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뼈져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부디, 어머님께서 지금의 그 마음을 잃지 않아 오래도록 사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오늘도, 저는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 부디 우리 어머님과 저의 건강을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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