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게시판 - 나의 투병 일기, 성공적 투병 사례를 올려주세요!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할지 망설이다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2005년 9월중순경 평소처럼 아침5시 30분에 일어나 쌀을 씻어놓고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고 뒤를 돌아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대변위에 선홍색으로 피가 묻어있었습니다
평소에 변비나 치질이 없었던 저는 이상하단 생각은 했지만 이내 잊고 평상시처럼 출근을 했습니다
그러다 10월의 어느날 또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뒷물을 하는데 화장실바닥으로 벌건 핏물이 흘러내려갔습니다 깜작놀란 저는 그주의 토요일 회사휴무일에 대항병원으로 가서 면담을 하고 대장내시경 검사를 예약하고 왔습니다
12월 31일로 예약을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저는 12월초에 독감에 걸렸습니다 예전에 감기기운이 있을때는 이비인후과에가서 진료받고 2일정도면 정상이 되었었지만 이번감기는 너무 심해서 직장일을 할수 없을정도의 두통과 아랫배에 통증이 오는데 온몸에 식은땀이 흐를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오면서 검붉은 핏덩어리 같은것들이 나와서 기독교인인 저는 그럴때마다 아랫배를 잡고 아무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12월 중순이 지나도 감기는 낫지를 않고 통증횟수가 잦아지게되어 저는 회사에 휴직신청을 하고 12월 30일까지 출근했습니다
12월 31일 오전에 내시경을 했는데 다시한번 더 내시경을 하자시더군요 오후에 내시경을 다시하고 의심스러운 부분은 조직검사를 하기위해 조직일부를 떼어내고 끝났습니다
CT촬영을 하고 일주일 후에 결과를 보러 혼자갔습니다
2006년 1월 6일 오전 저는 혹시나하고 간단한 입원준비를 하고 병원에 갔습니다
제차례가 되어 담당선생님을 뵈었는데
선생님 : “결과 보러 오셨죠?”
저 : 네
선생님 : 가족성 용종증이구요 + 대장암 + 직장암 이십니다
저 : 제가요?? 얼마나 진행되었나요??
선생님 : 보호자분 같이 오셨나요??
저 : 아니요 저 혼자 왔습니다
선생님 : 조~금 진행되셨네요...
저 : 선생님 암은 왜 걸리는건가요?? 주요 원인은 뭔가 요? 저는 결혼하기전까지 고기를 거의 안먹었고 남편도 고기를 안좋아해서 채식위주로 먹었고 인스 턴트식품이나 페스트푸드도 거의 안먹는데요??
선생님 : 주요원인은 스트레스죠
저 : 주요원인이 스트레스라면 할 말 없네요
선생님 : 우선은 대장에서 2개 직장에서 1개의 암세포가 발 견되었고 항문을 살리기위해서 직장은 항문에서 1CM만 남기고 대장과 직장을 모두 절제할겁니다
오른쪽 배에 주머니를 달고 배변을 하다가 2,3개월 후에 주머니 떼고 연결할겁니다 수술시간은 5~6시 간 걸릴겁니다 개복과 복강경 두가지가 있는데 수 술비는 두배정도 차이납니다
저 : 완치 확률은 몇% 보시나요??
선생님 : 완치 100% 자신합니다
저 : 완치 100% 라면 걱정할 일 없네요 알겠습니다
담당 선생님이 “본인 맞으세요??” 라고 물을정도로 나의 얼굴은 편안했고 마음도 담담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실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속으로 나는 이렇게 외쳤다 “ 암 너 나한테 딱 걸렸어!!! 넌 이제 나한테 졌어.. 내가 확실히 이겨!!!”
이렇게 면담을 마치고 수술날짜를 잡고 여러 가지 수술전 검사를 하고 집에와서 기다리고 있던 딸한테 “엄마 암이래” 하고 진단결과와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했더니 울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겸사결과를 묻는 전화가 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딸이 큰소리로 울면서 자기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는데 맘이 참 아팠습니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울기는 왜 우니?? 엄마 안 죽는데 걱정하지마 하나님이 살려주신댔어 엄마는 꼭 이길거야”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결과를 알리는데 갑자기 수화기 저쪽에서 숨소리조차 안 들린다 “듣고있어요??” “응” “이따 들어와서 자세한 이야기할께요 걱정하지말고 일 마치고 들어오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참 평안했어요
이 평안함도 하나님께서 주시는것을 저는 잘 알기에 ....
1월 11일 아침 친정엄마께 전화를 걸었더니 조카가 받는데 오늘 병원에 정기검진 가신다 해서 오후 3시에 전화 걸었더니 안받기에 오후 5시쯤 다시 걸었더니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1월 12일 2시쯤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가 열도 펄펄 끓고 화장실에 다니는데 많이 힘들어보이셨어요 옷도 안치켰는데 화장실 밖으로 나오시려고 하고 순간 치매생각이 스치는데 앞이 캄캄하더군요
간호사실에가서 뭐라고 하니 간호사가오고 수련의가 오고하더니 중환자실로 옮겨야 할것 같다고 해서 오빠랑 남동생한테 연락하고 담당의사가 와서 저녁 9시가 지나 중환자실로 옮겨드리고 집에왔습니다
점심면회가 12시 30분이라 매일 점심에 면회를 갔는데 엄마는 “회사는 어떻하고 왔니?” “점심시간이 길어서 괜찮아요” 그러다 1월 17일 아침에 남동생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병원에서 오래가지 못할것 같다고 친척들께 알려서 얼굴들 뵈드리란다고” 언니에게 전화해서 오늘 밤비행기로 들어오라하고 점심면회시간에 갔더니 의식이 없으셨어요 1월 18일 새벽 언니가 한국에 들어오고 점심면회에 엄마를 뵈러가니 얼마나 또렷하신지... 언니를 보시려고 어제는 잠을 많이 주무셨나봅니다
수술날짜가 명절 일주일전이라 시어머님과 친정엄마 두분께는 비밀로 하기로 했습니다
1월 20일 점심에 엄마를 보고왔습니다 엄마를 마지막 본거죠
1월 21일 군인이었던 아들에게 휴가나오면서 외할머니 뵙고 오라고 했고 오후에 시동생집에 와 계시던 시어머니를 뵙고 왔습니다 동서에게 미안하단 말과 명절 준비할 돈을 좀 줬죠
2006년 1월 22일 주일예배를 드리고 기도부탁을하고 입원준비를 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1월 24일 아침 첫번째 수술이라 남편이 가서 설명을 듣고 저는 가족들에게 웃어보이고 손을 흔들며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5~6시간 예정했던 수술이 8시간 걸렸다더군요
회복실에서 눈을 뜬 저는 다리가 저리고 통증이 오는데 남편과 아들은 두 다리를 주무르고 딸은 제가 잠들지 못하게 하느라 뺨을 두드리고 얼굴을 흔들고 말을 걸고 하면서 세식구가 저를 위해 애쓰는 가운데 밤 12시가 지나자 저는 잠들 수 있었습니다
1월 25일 새벽 5시가 조금 지나니까 간호사가 들어와서 체온, 혈압, 맥박을 재고 채혈하더니 나가서 체중재고 운동하라 했습니다 두 아이의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나려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일어날수가 없었습니다 담당선생님이 회진 오셔서 수술은 잘 되었으니 이제 회복잘해서 건강해지는 일만 남았다고 하셨습니다 아침 9시 30분쯤 간호가가 와서 힘들어도 일어나서 운동해야 된다고 하는데 눈물이 나올만큼 아팠습니다 두아이와 간호사의 도움으로 겨우 병실에와서 누웠는데 도저히 운동은 못하겠어서 그날은 그냥 누워만 있었습니다
1월 26일 새벽 간호사가 회진 돌고나서 간호사실 앞에있는 체중계로 가서 체중재고 조심조심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많이 아팠지만 무통주사가 있어서 그런대로 참을만 했습니다
어제, 오늘 이틀동안 진통제 주사는 3대 맞았습니다
간호사가 아프면 말하고 진통제를 맞으라고 하는데 참을만 했습니다 병실에서 계속 찬양을 듣고 따라하면서 통증을 잊을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에 가능한일이었지요
1월 27일 오후 여고동창들이 문병왔습니다 시어머니께 회사에서 외국출장 가라한다면서 거짓전화를 했습니다 며칠걸리냐고 하셔서 10일걸린다고 하니 “할수없지”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시며 혼잣말로 “제사 안모시려고 염병을 허네” 허걱!!!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네요 친구들이 옆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시어머니한테 사실대로 말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는 없었지요 시동생한테 전화를걸어 서운한맘을 전했더니 어머니가 몰라서 그러신거니 맘 상해하지 말고 몸조리나 잘하라고.... 친구들이 가고 남편이 퇴근해서 저녁먹고 오늘은 저와 함께 자려고 왔습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남동생한테 전화가왔습니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이제 겨우 조금씩 걷고있던 저는 어머니 곁에 가 볼 수도 없고 이상하게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1월 28일 새벽에 남편이 엄마 장례식장으로 가고 그날 저는 오전엔 아침햇살을 한병 마시고 오후에는 물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1월 29일 아침에 미음이 나왔습니다 점심과 저녁엔 죽이 나왔습니다 점심엔 1/3 만 먹고 저녁엔 1/2 을 먹었습니다
통증도 거의 없어서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1월 30일 설날 아침입니다 남편이 두아이와 같이 시동생네로 차례를 지내러 갔다 엄마 장례식장으로 가고 저는 57년생 인터넷 친구들이 와서 저와 놀아주다 두명은 가고 한친구는 저의 병실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저녁까지 죽을 맛있게 먹고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밤 9시쯤 지났을때 갑자기 구토가 났습니다 저녁 먹은것을 토하고 식은땀이 나면서 열이나고 갑자기 이상증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3시 30분쯤 되면서 구토도 멎고 열도 내렸습니다 친구와 저는 잠도 거의 못자고 그날밤을 보냈습니다
1월 31일 엄마의 발인이었습니다 금식을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하였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가족들이오고 친구들은 갔습니다 진정이 된 저는 가족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저녁먹고 남편이 오기로 하였습니다 오후에 친구가 와서 이야기를 하던중에 갑자기 오한이 들면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한 물 수건으로 맛사지를 하니 몸이 따뜻해 지는가 했더니 갑자기 열이나면서 구토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몇시간이 지나자 안정이 되었습니다 친구가 가고 남편이 왔습니다
2월 1일 오전에 X-RAY와 CT촬영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항문안쪽에 만들어놓은 인공직장에 문제가 생겨서 12시 30분쯤 반신마취로 수술을 했습니다 (일명 첫 번째 보수공사^^*)
오후 3시쯤 담당선생님이 오셨습니다 괜찮냐고 하시는데 항문이 화끈거리고 쑤신다고 하니 약간의 치질끼(?)가 있어 지졌다고 하기에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월 24일의 수술결과가 나왔는데 대장암 3기였다고 말씀 하시면서 조직검사결과 대장에 11개 직장에 1개의 암세포가 있었다고 “총 12개 암 덩어리를 달고 다니셨네요” 하신다... “그래서 제가 똥배만 불렀었나봐요”^^* 하면서 웃었습니다
2월 2일 시어머니께서 시동생네 계시다가 우리집으로 오셔서 딸이 시어머니 수발들기위해 집으로 가야했고 그때까지 1인실에있던 저는 7인실로 옮겼습니다
여러 환자분들과 이야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날밤 잠자리에 들었는데 보호자분들의 요란한 화음(?) 덕분에 잠을 거의 못잤습니다 낮에는 면회오신분들이 있어 시끄러워서 잠못자고 밤에는 화음덕분에 잠못자고
그렇게 2월 4일 새벽에 되었습니다 거의 잠을 못자고 있다 새벽 5시 조금 지나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누가 제 아랫배를 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느낌은 너무 따뜻하고 편안했습니다 들어오는 발자국소리도 못들었는데 누굴까??? 가만히 있다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가슴에 이상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나 지금껏 교회를 다니면서 체험하지못한 그것은 진정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이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확실히 살리셨구나 아멘~”
그날 오후 옆구리에 부유물주머니와 항문에 관 한개를 달고 퇴원했습니다
일주일을 불편하게 지낸후 2월 11일 병원에 가서 옆구리의 주머니와 항문에 달고있던 관을 빼고 왔습니다
잘 견디고 있던중 3월 29일 교회에 하프연습을 가던길에 갑자기 달려든 자동차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날도 기적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다른날은 집에서부터 악기를 어깨에 메고 나가는데 그날은 계속 들고 갔습니다 그래서 악기가 완충작용을 해서 다리는 멀쩡했고 넘어지면서 악기가 얼굴을 쳤고 타박상만 입었는데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집에 왔고 다음날 근처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왔습니다 3월 31일에 이사를 앞두고 있던 저는 이사하고나서 그 근처의 병원에서 3주정도 입원했지만 팔꿈치가 낫지않아 퇴원하고 다른병원으로 통원치료를 다니다가 연주를 앞두고 주사를 맞으니 통증이 멎었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통증이 재발하고 있지만 병원에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연주와 찬양을 하고있어요
3개월동안 수차례의 검사를 하고 4월 26일 배 아래쪽의 장루를 떼고 연결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경과가 좋아 5일째 되는날 오전 물을 마시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구토가 나왔습니다 물은 반컵 조금넘게 마셨는데 나오는물은 두컵이 넘게 나왔습니다 다시 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액은 들어가는데 항문으로 가스는 나오지않고 가스가 차니 배가 불러오고 역류를 방지하기위해 콧줄을 끼웠습니다
콧줄을 끼우는데 갑자기 중환자실에서 콧줄끼고 계셨던 엄마생각에 눈물이 멈추지않아 이불을 덮어쓰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이렇게 힘든걸 엄마가 무의식중에 콧줄을 잡아빼셔서 어느날 면회갔을때 엄마의 두손은 양쪽으로 묶여있었습니다 저희가 면회할 때 묶인줄을 풀어드리고 면회 끝나면 다시 묶이고 하셨던 엄마생각에 지금 또 눈물이 납니다 ㅠ.ㅠ
그때 저는 15일을 더 금식한후에 20일만에 퇴원했습니다
퇴원하고 집에와서 배변훈련(?)을 하는데 항문이 너무 따갑고 쓰리고 아파 화장실에서 변을보고 따듯한물로 씻을때면 엄마를 부르면서 울기도 했습니다 저는 화장실안에서 울고 딸은 우는 저 때문에 맘이아파 화장실 밖에서 울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화장실문앞에서 놀고(?) 지내던중 두,세번쯤 참는 훈련을 하는데 갑자기 질쪽으로 푸르륵하면서 대변이 나오는것이었습니다 설마하면서 살펴보는데 또 그러더군요
담당선생님 진료날까지 참았다가 병원에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참 어이없는일이 발생했습니다 200명에 한명꼴로 일어난다는데 배변을 참을때 소장을 잡아당겨서 만든 인공직장의 얇아진부분이 터지면서 질벽으로 뚫어졌다는겁니다
“200대 1로 당첨되었네요” 했더니 선생님이 기가막히다는듯이 “화를내도 시원찮을판에 당첨이 무슨말이냐”고 하더군요 “저처럼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이런일이 생겨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을가진 사람에게 이런일이 생겼으면 그사람은 암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제게 이런일이 생긴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니까요”
바로 입원을 해서 금식하면서 관찰을 하다가 다시 식사를 하면서 배변을 지켜보는데 병실에 환자가 많아서 변이 나올때 바로 닦을수 없게되니 항문이 너무아파 퇴원했습니다
집에서 질쪽을 소독하면서 기다리다 다시 입원해서 6월 21일에 전신마취로 직장과 질쪽으로 뚫어진곳을 꿰매고 다시 장루수술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부터 채혈에 주사맞을곳 찾느라 7번을 찔렀습니다 혈관이 너무 없어서 오른쪽 쇄골뼈아랫쪽에 부분마취로 C_LINE수술을 했습니다 주사맞기가 한결 편해서 좋았습니다
6월 30일에 퇴원했습니다
다시 장루를 하니 밥도 잘 먹고 견딜만 했습니다
그런데 체질도 변하는지 잘먹던 우유도 갑자기 장이 꼬이고 아파서 여러번 입원을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질쪽으로 뚫어졌던곳이 막히지않아 또 수술을 했습니다
그렇게 2006년에는 9월 24일까지 7번의 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피부의 이상도 생겨 장루주변의 피부가 헐기 시작했습니다 장과 피부가 닫는 장루 안쪽은 물론이고 장루판 바깥쪽의 피부도 헐어 통증으로 잠도 제대로 못자는 날이 많아지고 몸도 자꾸 야위어 갔습니다 1월 24일 수술전 53KG이었던 체중이 수술후 2월 4일 퇴원시에는 46KG이었고 여러번의 수술과 금식으로 6월 30일 퇴원시에는 39KG이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체중이 늘어서 12월초에는 44KG이었는데 피부가 헐기시작해서 잠을 못자니까 2007년 1월 19일 수술할때는 40KG이 조금 넘었습니다
1월 19일 여러번의 검사결과 상황이 좋아져서 반신마취로 장루를 떼고 연결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혈관이 안좋아서 이번에는 왼쪽쇄골뼈 아래쪽에 부분마취로 C_LINE수술을 했습니다 가스도 나와 물을마시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갑자기 또 구토가 나와서 콧줄을 꼈습니다
2006년 1월 최초수술하고 나서 3월부터인가 항암치료를 할때 저는 젤로다라는 약으로 9번 먹자했었는데 그동안 수술을 여러번 하느라 수술전, 후에는 항암치료를 못했기 때문에 6번만 먹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하자면서 이번에는 15일 간격으로 2박3일동안 입원해서 주사맞는 항암치료를 더 해보자고 혈관이 약해서 항암주사를 맞기위해 오른쪽 쇄골뼈아랫쪽에 부분마취로 포트수술을 했습니다
퇴원후 2006년 5월처럼 화장실앞에서 놀면서 배변훈련을 하던중에 3월 3일 또 인공직장이 질쪽으로 터졌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검사를하고 집에서 소독하면서 지내다 3월 마지막주에 통증이 심해져서 입원하고 지켜보다가 4월 5일 목요일오후 반신마취로 수술하는데 하다가 안되면 전신마취로 할수도 있다는 상담을 한후 수술실로 들어갔는데 반신마취로 수술시작한지 한시간후 도저히 안되겠다면서 전신마취로 개복수술을 해서 다시 장루를 했습니다 5시간의 수술을 했는데 다음날 도저히 움직일수가 없어서 일요일오후가 되어서 겨우 병실로 옮겨왔습니다 월요일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다 오후에 침대를 조금씩 세워 등을 바쳐 의지해서 일어나 조금씩 걸어봤는데 배가 너무 아프고 당겨서 허리를 곧게 펼수가 없었습니다
화요일부터 억지로 일어나 다리가 당기도록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물을마시고 죽을먹기 시작했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음식을 먹을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금식했다가 먹었다를 반복하는동안 통증이 너무 심해서 숨을쉬기도 힘들었습니다 밤에 잘 자기위해 낮에는 통증이 와도 심호흡을 하면서 참았습니다 딸이 퇴근하고 와서 통증을 참는 엄마를 보다못해 간호사실에가서 진통제를 놔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께 너무아프다고 했더니 수술을 여러번 하다보니 장이 좁아지고 그래서 일종의 병목현상이 생기기때문에 음식물이 그곳을 지날때에 통증이 오는거라고 두달정도 지나면 괜찮아 질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예수님의 못박힌 손바닥보다 안아프다라고 생각하면서 참고 지냈습니다
수술후 일주일째 되는 4월 12일 검사를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원래는 반신마취후 검사를 하는데 체력이 너무나 떨어져서 마취를 못하고 검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검사를 시작하는데 너무 아팠습니다 검사도중에 저는 “선생님 직장에서 질쪽으로 뚫어진곳도 꿰맸지요?” 했더니 “질쪽으로 뚫어진 부분을 찾지못해서 못꿰맸다”고 했습니다 “그럼 구멍은 언제 또 꿰매나요?” “다음에 장루떼고 연결하기전에 구멍부터 꿰매고 상처 아물면 연결할거예요”.... 검사가 끝나고 항문이랑 질쪽이 너무 아파서 일어설 기운도 없는데 구멍을 꿰매지 못했다는 말에 기운이 쭉 빠져서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실에서 병실로 침대를 옮겨주시는 분들이 안타까운지 옆에서 격려해주시고 눈물도 닦아주시고 수술실 선생님들도 “항상 명랑하게 웃고 그러시더니 왜그러냐고” 하면서 힘내라고 등도 토닥여주시는데 한참을 울고나서야 침대에 누워서 병실로 올라왔습니다
그날 오후 퇴근해온 남편과 오빠내외, 남동생 내외가 선생님과 면담을 했습니다 오빠는 지인을 통해 구하기 어렵다는 아산병원 병실을 확보해놓고 저를 옮기겠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은 다른병원에서는 저를 맡을선생님이 없다고 저를 못보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산암센타나 서울대병원에서도 직장암이나 대장암에 대해서 소견을 물어보실정도로 자신있다고 하면서 걱정하는 가족들맘은 알지만 저는 이병원에서 책임진다고 하니 가족들도 선생님만 믿겠다고 하고 면담을 마쳤습니다
수술후 통증이 심해서 항상 자기전에 진통제를 맞았었는데 너무 심한날은 진통제를 맞아도 통증의 정도만 조금 약할뿐 통증이 멈추질않아 2시간동안 시계만 보고있다 진통제를 다시맞고 겨우 한시간자고 또 진통제맞고 그런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잠도 부족하지만 통증 때문에 금식이 잦아지니 살이 점점 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에서 안면만 있는 집사님이 문병을 오셨습니다 저를위해 기도를 해주고 싶은데 어떠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잘 알지도 못하는 저를위해 기도를 해주신다는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저를위해 한시간이 넘도록 기도를 해주시고 가셨습니다 그날밤 저는 너무아파 겨우 한시간정도 잔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그 집사님이 또 오셨습니다 어제 어땠냐고 물으시기에 사실대로 말했더니 그러면 하나님이 치료하시는거니까 더 열심히 기도하자시더군요 하루하루 통증이 적어지고 그 집사님이 기도하시는데도 저는 잠이 쏟아져서 참지못하고 잠이들면 집사님은 혼자서 기도를 끝내고 살며시 가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기도를하러 오시고 점점 통증이 없어지자 죽을먹다 밥을 먹게되었는데도 통증이 없어서 7주만에 퇴원을 하게되었습니다
퇴원후 4일째 다시 장이 꼬여서 6일간 입원후 다시 퇴원하였습니다 퇴원할 때 체중은 35KG이 안되었습니다
한달반 정도 잘 지내다 6월 28일 수술후 불규칙적인 생리를 하게되었는데 생리통이 너무 심해 허리도 아프고 배도 아픈데 이상하게 통증이 멈추지 않으면서 항문윗쪽이 아프면서 항문으로 변이 나오는것이었습니다 변이 나오면 통증이 없어졌다 다시아프면 항문으로 변이 조금나오고 그렇게 하루종일 거의 24시간을 잠시잠시오는 통증으로 견디다못해 병원에 갔더니 염증이 생긴것 같다면서 당장 입원하라고 했습니다 입원한후 금식하면서 이틀동안 여러가지 검사와 CT촬영을 했는데 결과는 염증이 없다는것이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경과를 보는데 방법이 없어 일주일후 퇴원을 했습니다 다시 일주일후 가스주입을 하면서 내시경을 하는데 항문쪽으로는 이상을 발견못해서 장루쪽으로 주머니를 떼고 검사를 하다보니 장루쪽에서 뭐가 잘못되어서 변이 항문쪽으로 넘어가는거라고 다시 8월 13일로 수술날짜를 잡고 기다리는 동안 하루24시간을 통증속에서 살았습니다
드디어 8월 13일 전신마취로 장루부분으로 수술을 하는데 잘안되면 다시 개복하기로 상담후 수술했는데 다행히 개복은 안했습니다 2007년도에도 14번의 수술을 했고 마지막 8월 14일 수술후 통증이 없어서 지금까지 잘 지내면서 올해 남은 두 번의 수술이 잘될거라 믿고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장루주변의 피부가 조금 헐었다 나았다하는 정도라서 견딜만합니다
제가 암에 걸리고 나서 교회집사님, 권사님들이 제게 어떠냐고 안부전화를 걸어오실때면 전 항상 밝은 목소리로 대답하지요 “ 저 하나도 안아파요 밥도 잘 먹어요...” 라구요 그러면 그쪽에서 “ 당신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눈물이 나서 전화했더니 너무 쌩쌩하네 위로해주려고 전화했는데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네” 그러면서 밝게 웃으시면서 전화를 끊습니다 이렇게 제가 확신을 갖고 밝게 사는것은 내가 믿는 그분이 꼭 저를 살리시고 크게 쓰시려는 계획을 알기때문입니다
제가 병원에 입원해서 처음에 아플때는 못 느꼈는데 병원복도를 운동하면서 걷다보니 많은 환자분들이 “죽겠어” 미치겠어“ 라는말을 참 많이 쓰시더군요 그럴때면 저는 그분들께 ”살기위해서 수술을 했고 살아야 하는데 왜 죽겠다고 말하느냐“ 면서 ”죽겠다, 미치겠다 한번에 벌금오백원“ 그러기 시작했죠..
전에 아이들이 어렸을때 시어머니께서 말끝마다 죽겠다를 하시기에 어머니께도 그럴때마다 벌금 오백원 내시라고 했더니 “에구 죽을래도 며느리 때문에 살겠네” 그러시면서 죽겠다는 말씀이 많이 줄었거든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나 병원에서 알게된 환자분이 입원하셨다고하면 병원으로 놀러(?) 가곤했죠 거기서 힘들어 하시는 환자분들에게 제가 할수 있는 일은 항상 밝고 즐거운 마음을 갖는것과 살수있다 아니 나는 꼭 산다 라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긍정적으로 희망을 갖고 살게하는것이었죠
2007년 1월 19일 복원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해 있을때였습니다 구토증세로 콧줄을끼고 있으면서 머리가 지저분해서 머리를 감았습니다 간호사분이 보더니 “콧줄끼고 머리감은 환자는 처음봤어요” 하면서 어떻게 머리 감을 생각을 했냐고 하였습니다 “깨끗하게 살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죠^^*
그렇게 이방 저방 돌아다니면서 환자들을 웃기기도 하고 TV채널도 조정해드리고 다니다 수술하고 2인실에서 회복중인 환자분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웃기면 “ 아이고 나 너 때문에 죽겠다” 그러셨어요 제가 “어머니 죽겠다 한번에 벌금 오백원” 그랬더니 “아이고 얘가 사람잡네 에구 미치겠다” “어머니 미치겠다도 벌금 오백원... 그리고 도 먼저 치시고 레 다음이 미예요 미 먼저 치지마시고 항상 도 먼저 치세요”^^* 그때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는데 제가 웃겨서 배땡겨서 미치겠다고 하시는거예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계신데도 “어머니 미치겠다 벌금 오백원” 또 그랬죠 선생님도 웃으시더니 웃는것도 장운동에 좋으니까 많이 웃으시라면서 저한테 잘했다고 하셨지요^^* 그분께 7인실로 옮겨서 즐겁게 지내다 퇴원하시라니까 다인실은 시끄러워서 그냥 2인실에 있다 퇴원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같이 계시던 할머니가 “아따 동상 우리 내일 저쪽방으로 옮겨서 재미나게 있다 가세 나 수술전에 그방에 있었는데 얼마나 재미있다고” 그러면서 방 옮기기를 권유하시니까 저에게 “니 자리는 어디냐?” 물으셔서 마침 제 옆병상이 비어서 “어머니 제 옆자리로 오세요” 했더니 나중에 운동하시다가 병실로 들어오시더니 “니 자리 어디니?” 그러고 또 물으셨어요 “ 어머니 이 자리 침 발라놓지 않으면 누가 올지 몰라요 자리 뺏기기전에 빨리 보따리 한 개 던져 놓으세요” 그랬죠... 운동하시다가 또 들여다 보고 “아직 비었냐?” 그러시고 몇 번물어보시다 다음날 아침에 제 옆자리로 옮기셨지요 며칠뒤 운동하고 들어오니까 제 왼쪽병상 환자분이 그분께 “형님 퇴원하기전에 병실에서 칠순잔치 하셔야죠?” 하시기에 그러면 제가 축하연주 해드리겠다고 하고 아들에게 크로마하프를 갖고 오라고 했죠
오후에 아들이 악기를 갖고와서 제가 축하연주를 해드리기전에 “기독교인인 저는 찬양곡밖에 없으니 교회를 안다니시더라도 이해해주세요”라고 양해를 구한뒤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를 찬양하고나니 온몸에 땀이 흐르고 힘이들었지만 제마음은 너무 기뻤어요 그런데 제 양옆의 두분이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계시는거예요 “ 야 임마 그렇게 아픈놈이 어떻게 힘든찬양을 하니” 그러시는거예요 조금 쉬었다가 다른찬양을 한곡 더 했어요 갑자기 제 옆의 칠순어머니께서 “야 너 내딸하자 나 딸없는데 니가 내 딸해주면 좋겠다” 그러시는거예요 저는 너무 기뻤어요 “정말요?? 그래주신다면 제가 더 좋죠.. 작년에 엄마 잃은것을 어떻게 아시고 하나님이 제게 엄마를 보내주셨네요” 병실에서 박수가 터지고 칠순잔치가 모녀인연까지 맺게되었으니 그날이 암병동의 축제날이었습니다
제가 암에 걸리고나서 친구를 통해 <암과 싸우는 사람들>과 <내친구 장루> 카페에 가입을 하게되었어요 병원 출입이 잦아 활동은 못하고 가끔 글만 읽고 지내던중 작년11월 <암싸사>모임과 12월<장루>모임 올 1월 <암싸사>신년모임에 나갔어요 모임후기 읽으려다 암시민연대의 공지글을 읽고 웃음치료 강의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날 입이 찢어지도록 즐겁게 웃고 <바보웃음학교> 반장을 할 사람 손들라고 하는데 제가 “저요”라고 크게 말하면서 손을 번쩍 들었지요... 제가 힘쓰는 일은 못해도 우리 환우님들께서 즐겁게 웃으면서 행복하게 사실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신것이니 하나님의 일을 잘 수행할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봉사할겁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암환자분들이 “암 너 나한테 딱 걸렸어 넌 이제 죽은목숨이야” “내가 이겼으니 넌 이세상에서 없어져” 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난 암을 이겼습니다” 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암환우여러분 어느상황에 계시더라도 용기내시고 살수있다는 희망으로 즐겁게 하하하 웃으시면서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위에 웃음을 잃고 힘든 투병생활을 하시는 모든 환자분들에게 우리모두 웃음전도사가 되는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