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게시판 - 나의 투병 일기, 성공적 투병 사례를 올려주세요!
2006년 1월...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나의 분신은 겨울 햇살처럼 내 품에 안겼다.
아내를 닮아 눈도 크고, 얼굴형도 갸름하니 다행이였다. 날 닮았으면 장모님께 핀잔을 들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초점이 잘 모이지 않는 듯 약간은 멍한 표정으로 내 두 눈을 응시하는 아이의 눈빛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벅찬 감동에 가슴이 찡하고 행복했었다.
그렇게 아내를 포함한 우리 다섯 식구들은 아이의 손짓과 발짓 하나 하나에 웃음꽃을 피우며 하루하루를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보냈다. 생후 7개월이 지날 무렵 우리 가족의 불길한 운명은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아내에게서 아이가 자주 혈변을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동네 소아과에 가서 검사를 한번 받아 보라고 한 후 회사에서 인터넷을 검색했다. 가끔 어린 소아들은 혈변을 볼 수도 있다는 내용이 많아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며칠 후 토요일, 회사 일을 마치고, 아들에게 무슨 선물을 사줄까 하는 맘으로 퇴근 준비를 하던 중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는 동네 소아과에서 검사한 결과가 이상하다며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이 있었다고 했다. 난 속으로 “괜찮을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아내에게 병원에 갈 준비를 하게하고, 급하게 집으로 향했다.
오후 16:00경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에 도착해 아내를 진정시키고, 어머니께 아이를 맡긴 뒤 수속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니 그날따라 눈 밑에 점상 출혈들이 크게 확대 되어 여기저기 보이는 것이 예감이 안 좋았다. 집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현상들이 응급실에 오니 봇물처럼 눈에 쏟아져 들어왔다. 근래 들어 매일새벽 동일 시간대에 일어나 20~30분정도 울던 행동과 조금만 놀아도 피곤해 하던 모습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럴수록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마음은 계속해서 타들어 갔다.
그 당시에는 몰랐었다. 이미 의료진들은 응급 CBC(피검사) 결과를 보고 아이가 결코 쉽지 않은 만 명중 2~3명이 걸리는 백혈병(혈액암)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던 것을...
분주하고 정신없는 응급실 한켠에 불안한 모습으로 있을 때 여의사분이 다가와 아이의 증상에 대해 물었고, 아이의 배를 누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이내 말을 꺼냈다. CBC검사 결과 백혈구 수가 높고, 혈소판이 매우 낮으며 비장이 정상보다 많이 커져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것은 정규 검사를 받아봐야 알 수 있고, 우선은 혈소판 수혈을 받아야 한다며 노란색의 피를 아이에게 수혈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병동에 입원한 후 아침 일찍 골수검사를 받았고, 의료진은 내게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TV에서나 가끔 나오는 병명에 눈앞이 깜깜해 졌다. 검사 결과 혈액내에 30%정도의 암세포가 보이고, 하루라도 빨리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무섭고 혼란스러웠다.
아내는 그 소리에 휘청거리며 주저 않아 울기 시작했다. 나 역시 두려웠지만 용기를 내어 의료진에게 물었다. “치료 받으면 살수 있나요?” 의사 분은 “네... 최선을 다해 치료 받으면 살수 있습니다.” 라는 말을 전한 후 자리를 피했다. 난 아내를 진정 시킨 후 초조함에 복도를 서성이다, 우리 아이의 이름을 말하며 인턴 두 분이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들었다. 난 한걸음에 다가가 “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하며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처음에는 희망이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하며 안심 시켰지만, 집요한 물음에 인턴은 고민을 하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예후에 대해 내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생후 1년도 안된 상태에서의 발병률은 거의 없었으며, 7개월 된 아이가 항암치료를 견디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시 말해 1년 미만의 백혈병 소아의 대한 데이터는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두려웠다. 그렇다고 말을 하자니 충격을 받을 부모님과 아내가 걱정 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날의 절망감은 발병 후 지금까지 우리 가족에게 큰 상처로 남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병원 밖 벤치에 앉아 밤새 울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하는 자괴감에 죽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2~3일후 시작된 일주일 간의 항암치료는 아이에게 큰 고통 이였다. 39도를 넘나드는 고열과 구토에 아이는 갈수록 말라가고, 그런 모습에 쉼 없이 눈물을 흘리는 아내와 나에게 의료진은 오늘이 고비일 수 있다며 잘 지켜보라고 하였다. 다행히 아내의 지극한 보살핌에 아이는 한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1차 항암 치료를 마치게 되었다. 남은 2~4차 공고 치료까지 일주일 입원 후 다시 퇴원하는 반복적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발병 후 40일 넘게 병원 생활을 한 후 집으로 향하는 아내의 축 처진 어깨와 뒷모습에 난 다시 울고 말았다. 너무 고마웠고, 미안해서 그냥 이유 없이 자꾸만 눈물이 났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공고 3차 치료를 마친 후, 아이의 이식을 위해 기증자 검색을 부탁 했었는데 드디어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아이와 같은 DNA를 가진 7명의 골수 기증자를 찾았다고, 그 소식에 아내와 난 뛸 듯이 기뻤고, 이식을 받으면 다시 건강해 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며칠 뒤 아이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7명중 그 누구도 골수를 주지 못한다는 코디네이터의 말에 우리 부부는 부등 켜 안고 울었다. 7명의 주소를 알 수 있다면 개별적으로 찾아가 무릎이라도 꿇고, 우리 아이를 살려 달라고 빌고 싶었지만 강요 할 수 없었고, 정보 공개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 이였다. 이 슬픈 소식은 마치 비수처럼 가족들의 가슴을 또 한번 갈기갈기 찢어 놨다.
결국 우리는 차선책으로 골수이식 대신 소아에게 괜찮은 성적을 보이고 있는 제대혈을 이식을 하기로 했다. 2~3개의 DNA가 틀렸지만 제대혈이므로 이식이 가능하다고 하였기에 모든 것을 의료진에게 맡긴 채, 두 손 모아 기도했고, 그렇게 발병한지 8개월 만에 아이는 이식을 받게 되었다.
이식 후 2주간의 무균실 생활은 고통의 나날 이였다.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설사에 아들은 지쳐만 갔고, 온몸에 생긴 수많은 반점과 수포 때문에 가려워 괴로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잘 이겨내어 어느 정도 수치를 회복한 후 퇴원을 하게 되었고, 반복적인 외래와 한달에 1~2번 응급실 신세를 지며 아이는 서서히 몸을 회복해 나갔다.
이식한지 1년여가 다 되어가는 현재 면역 억제를 위해 복용하던 약을 포함해 모든 약을 다 끊었다. 거무죽죽했던 피부도 제 색으로 돌아왔고, 중간에
있었던 작은 고비들도 무사히 넘기게 되었다. 이제 며칠 후면 마지막 1년 골수 검사를 하게 되는데 더 이상 아이의 몸에 구멍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벅찬 눈물이 흐른다.
가슴 위쪽 깊숙이 파인 히크만 카테터의 흉터와 골반 주변의 많은 골수검사 흔적들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겠지만, 모두들 고개를 저으며 나이가 너무 어려 힘들다는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살리려 했던 의료진과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 자기 일처럼 헌혈증을 모아주며 발 벗고 도와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직도 치료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완치를 위해 오늘 하루도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가려 한다.
아이를 치료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 여겨도 살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암을 극복할 수 있고, 사랑과 정성으로 가족들이 환자를 보살피면 하늘도 돕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살고 죽는 것은 수치에 불과 할 뿐이다. 단 1%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스스로가 1%안에 든다고 생각하고 투병을 한다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요즘은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샤워 후, 늘 아이를 한동안 안고 있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의 작은 심장박동과 어깨에 기대어 귓가에 속삭이는 따스한 목소리가 삶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빠 좋아요” 라는 아이의 목소리에 온몸의 신경세포가 전율하는 감동과 행복함을 느낀다. 시간에 시간이 더해져 세월의 울창함이 전신으로 포옹할 무렵... 아이의 밝은 웃음과 더욱더 건강해진 모습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