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상담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메뉴 게시판에 암시민연대 관련 질문은 <가입인사/질문>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기적의 문을 여는 열쇠, 감사 -사진작가 이석주
(오스티엄 Vol.1 운명을 바꾸는 기술 감사)
아침 출근길 버스안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운명을 바꾸는 기술 감사"
감사일기와 함께 소개된 사진작가 이석주님의 이야기.
2008년 9월 30일, 30대 젊은 나이에 간암 말기,
이미 폐까지 전이된 시한부 선고 3개월을 받았다.
'세상은 왜 이 모양이지. 열심히 살았는데 나한테 주어진 게 뭐야.'
온갖 원망들이 밀물처럼 생각을 채울 무렵 정신이 번쩍 떠올랐다.
'몸 속의 병으로 죽기보다 내 속의 생각들 때문에 먼저 죽겠구나'
그는 겁이 났지만 살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생각나는 모든사람,
아니 핸드폰에 저장된 모든 번호로 문자를 보내기 시작한다.
"나 지금 간암 말기야. 3개월 정도 남았대. 보고 싶다. 한번 보러 와주라."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려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전혀 생각지 않은 곳에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한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검사 한 번에 200만원, 병원비 400만원, 수술비 500만원, 항암치료 300만원 ...
그런데 이 모든 비용들이 기적처럼 해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누군가 병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주기도 하고,
평화신문에서는 성금도 보내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도움은 따로 있었다.
어머니의 친구 분이 하루는 그를 찬아와 그의 손을 꼭 쥐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배우지 못해서 기도할 줄도 몰라. 그래서 기도를 못해.
하지만 너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기도해주고 싶구나."
그리고는 울면서 그 자리에서 기도해 주었다.
그리고 3만 원의 돈을 그의 손에 쥐어주고 갔다.
그 어떤 도움보다 그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위로와 희망을 주는 기도였다.
살고 싶다는, 아니 살 수 있다는 확신이 가슴을 채우기 시작했다.
수술을 앞두고 열 댓 명 남짓 되는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였다.
항암치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없이 받은 검사 얘기를 꺼냈지만,
친구들의 얼굴은 별반 반응이 없었다. 마음이 상려던 찰나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기분 좋은 얘기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사진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 얘기라면 신명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얘들아. 혹 전시회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표정한 친구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꿈을 꾸는구나. 멋진 자식!
그래 이게 바로 이석주라는 친구의 본 모습이지."
그때부터 희망으로 가득 찬 얘기들이 샘물 솟듯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한 친구는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처럼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얼마 후 그 친구는 신문사 기자가 되었고,
그의 사연은 기사가 되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기적의 원래 의미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기적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기적을 꿈꾼다.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소망마다 문은 있을 것이고, 문이 있다면 열쇠도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찾아와 그 열쇠를 빌려준다면 그것이 바로 '감사'가 아닐까?
순간순간 나쁜 생각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럴때면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퍼뜩 정신이 돌아온다.
행복할 수 있는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어리석은 일이다.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면 그는 일부러 행복해지기 위해 감사할 거리를 찾는다.
감사한 일이 생겨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감사를 찾는 것이다.
그는 지금 "LA에 눈이 오는 날"이라는 사진전을 준비 하고 있다.
그가 감사에서 배운것은 단 한가지 라고 한다.
그것은 결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겠다는 각오다.
아마 낫고 나서 해야지 했다면 지금과 같은 기적들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기적의 사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미소보이 생각
어제 버스에서 이글을 읽고 있는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 친구분의 기도가 지금도 머릿속에 아련히 남아 있다.
"나는 배우지 못해서 기도할 줄도 몰라. 그래서 기도를 못해.
하지만 너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기도해주고 싶구나."
그렇게 버스를 내리는데 평상시에는 뒷문으로 내리면서 "수고하세요"하고 내렸는데,
오늘은 앞문으로 내렸다. 버스기사님의 얼굴을 보고 미소지으면서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니
버스기사님께서 미소지으면서 "좋은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주셔서
기분좋게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걸어가는데 뒷쪽에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미꽃 10송이 한묶음 1,000원에 드립니다." 나는 순간 10송이 천원이라는 이야기에
가던 발걸음을 뒤로 돌려 보았다. 부부가 같이 장미를 팔고 있었는데, 가시를 다듬지도 않고,
신문에 싸서 팔고 계셨다. 난 얼른 "2,000원어치 주세요"하고 돈을 지불했더니,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장미꽃 20송이를 신문에 포장해서 주셨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요구르트 리어카를 세워놓고 계시는 요구르트 아주머니 였다.
나는 얼른 오다가 산 장미꽃인데 한송이 드릴께요. 하며 한송이를 드렸더니
들려오는 대답은 역시 "감사합니다." 였다.
그 다음은 건물 경비아저씨,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그리고 연구소 식구들...
모두 한결같이 "고마워. 감사해요."라고 응답해 주셨다.
쓰레기를 버리러 지하1층 분리수거장으로 가서 아저씨 두분께도 장미꽃 한송이씩을 드렸다.
그랬더니 "다른 사람 줄사람도 없는데 아무튼 고마워요" 라고 하셨다.
장미꽃 두송이가 남아서 지하1층 식당 2곳 문에다 걸어놓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오늘 내가 살아가면서 너무나 소중한 말들을 들었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벅차 오르고 따뜻함을 느꼈다.
저녁 6시28분 문자가 날아 들어왔다. "딩동" 고운님이 었다.
"우리 지수가 오늘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약도 병원도 모두 끊고 건강한 사람이 된거죠~~
그동안 함께 기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내 머릿속을 가득메운 한마디 "감사합니다."
소중한 하루의 경험을 통해서 나는 쓰다 말다하던 감사노트를 다시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미소보이 차니의 내가 감사하는 이유 중에서..





자유 게시판
자유 게시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