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고 친구인 선경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과 다섯 살 된 딸아이를 가진 가정주부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공무원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 친정인 강릉으로 내려가 단란한 가정을 꾸미며 알뜰하게 살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항시 직장을 다시 다니고 싶어는 했지만 지방이라 마땅한 직장도 또 두 아이를 돌보아야한다는 보통 전업주부들이 겪는 갈등을 갖고 있는 평범한 주부였다.


 


  친구 선경과 나는 가끔 전화통화로 일상의 작은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또 내가 강릉으로 휴가를 가거나 하면 그 친구 부부와 아이들과 경포대쪽으로 드라이브도 가고 선경의 집에서 숙식을 하고 오던 가까운 사이였다.


 


  그런데 올 초봄 어느 날도 안부전화를 하다가 항상 반겨주고 의례히 통화가 길어지던 우리의 통화에서 선경이는 친정어머니가 집에 와 계시다며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크게 개의치 않고 나도 전화를 끊었는데 며칠 뒤 나와 선경과 같이 20대에 어울려 다니던 다른 여고 동창인 혜정이가 약간 들뜨고 허둥대는 소리로 선경의 위암 소식을 알렸다. 그 친구가 더 놀라고 경황이 없는 것 같았다. 나 역시도 며칠 전 침착하던 선경의 목소리를 들었던 터라 당황하고 황망해서  동창 혜정이 전해주는 소식이 멍하고 잘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짜증까지 나서 나는 혜정에게 그렇게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라고 하면서 화까지 냈던 것 같다. 그 친구 역시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며 바쁘게 쫓기듯 사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고 황망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선경에게 차마 전화할 엄두를 못 냈다. 친구가 얼마나 참담할까를 생각하니 선뜻 뭐라고 말해야할지도 무엇을 물어보아야할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사실 여부를 물었더니 위암이  맞다면서 며칠 뒤 수술을 하러 서울로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분당 삼성병원에 입원해 있는 선경을 찾아갔더니 친구 선경이는 의외로 담담하고 평안한 얼굴이었다. 수술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고 했고 금식이라 기운이 없다면서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사줄 수도 해줄 수도 없어 더 안타까웠다. 병실에 함께 있는 선경의 남편의 얼굴도 지난해 여름에 보았을 때보다 몰라보게 수척해지고 불안해보였다위의 거의 대부분을 잘라내고 식도 끝부분만 약간 남겨 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할말을 잃었다. 위암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어 할 말이 없었고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될 지도 몰랐다.


 


  식도 끝부분의 위가 수술이 잘 되면 조금씩 커간다고 했다. 의사가 설명한 부분이라며 수술의 성공여부도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는지도 개복을 해보아야 안다고 말해 더 심각하게 느껴졌다. 선경의 위암소식을 들은 다음 친정아버지께 여쭈어보았더니 위암수술은 예후가 좋다고 말씀하신지라 조금은 안심을 하고 왔었다. 그리고 대학친구 중 한명에게서도 자신의 오빠가 위암이었는데 수술 후 정상적인 생활을 잘 유지하고 있다고 그 후 자신의 형제들이 보험을 드는 등 한바탕 소동이 났었다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도 있었기에 .......  선경이는 의사가 남편에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다 만나보라.” 그랬다면서 마치 죽을 것이 당연하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집에서 양재기술을 배워서 아이들 옷을 만들어 입히고 자신의 간단한 원피스를 만들어 입는 것에 잔잔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친구에게 닥친 시련인지라 나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선경이는 자신의 성격 탓을 했다. 자신의 성격이 못 되서 이런 일이 닥친 것이라면서....... 내가 아는 그 친구는 성격도 야무지고 바지런한 성격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너무 자신의 탓을 하지 말라고 친구에게 “넌 열심히 살았다고 너무 열심히 살아서 그런 것뿐이야!”라고 말해 주었다그러자 남편에 대한 섭섭한 감정도 쏟아내었다. 자신은 고통스러워서 걱정이 되서 잠도 못 자는데 옆에서 잠만 쿨쿨 잘 자더라고 하면서.......


 


  나는 남편도 얼굴이 말이 아니더라고 했더니, 그때서야 선경이는 남편이 자신의 위암사실을 알고서 위암에 대해서 책을 사서 읽고 인터넷도 찾아보며 공부를 많이 했다면서 남편이 자신에게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힘이 되어준 얘기를 했다.


 


  친구가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약해졌는지를 알 거 같았다. 항상 균형을 잃지 않고 말하고 행동하던 친구가 그렇게 자신을 탓하고 남편을 탓하고 있는 것에서 알 거 같았다. 나는 선경에게 “나도 친구이지만 친구보다 형제자매보다 가족인 남편이 현재 너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고 든든함을 줄 거라고 두 아이를 생각하면서 힘을 내야해! 선경아!” 하고 말했다.


  나 역시도 건강이 좋지 않아 거의 20여 년간 약을 먹고 있는 터라 약간은 친구의 입장을 알 거 같았다. 그럴 땐 그냥 하소연이나 푸념, 애꿎은 자신이나 남에 대한 비난의 소리를 하는 것도 견디는 방법일 수도 있고  그 넋두리를 들어주는 것이 친구인 나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친구에게 수술 후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전철을 탄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누가저 아줌마는 왜 전철에서 우는 걸까?’ 하고 생각하든 말든 나는 그냥 눈물이 흐르는 대로 그냥 두고 울었다.


 


  다행히도 내가 다시 친구의 병실에 찾아 갔을 때는 너무 반가운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이 너무 깨끗하게 잘 되었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암이 진척이 덜 되어 수술도 빨리 끝냈다고 하면서 친구는 나름대로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수술하던 날 이미 전화로 소식을 듣고 왔지만 수술 전과 별반 다름없어 보이는 친구를 보니 나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회복을 위해서 많이 걸어 다니라고 했다고 해서 나는 병실복도를 함께 서너 바퀴 걸어주었다. 같이 걸으면 친구도 힘이 나서 덜 치치고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친구는 수술이 끝나고 안심이 되어서인지 그때서야 병실복도에 붙어있는 위 사진들을 보며 자신의 상태며 이런 저런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조치할 것도 없고 하니 집으로 가서 걷는 운동하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면서 열흘정도 있던 병원에서 아이들이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간다는 것에 안도감도 들고 기운도 차려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다른 장기도 아니고 수술부위가이다 보니 미음 같은 죽을 쑤어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이 먹어야 기운을 차리는 것인데 미음을 먹어가며 그것도 자신이 직접 챙겨먹고 아이들 돌보고 하려면 말이 쉽지 막막했으리라.


 


  선경은 퇴원 후에도 암 치료를 위해서 3개월에 한번씩 서울에 올라와서 주사를 맞고 갔는데 한 번 주사를 맞고 갈 때마다 속이 다 뒤집어질 것 같이 고통스럽고 울렁거린다며 그런 주사치료를 6번이나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다면서 나와 전화통화를 할 때 주사 맞기가 싫다고도 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출산을 두 번이나 한 친구가 그런 소리를 다할까 하면서도 “나 역시도 나을지도 안 나을지도  모르는 병이었지만 20여년이 지나고 보니 시간에 비해 이 정도 나았는가 싶어 한탄스럽기도 하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진 나를 보며 이 정도나마 건강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고 너 역시도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다보면 그런 시간이 다 지나가고 옛 말하며 살 때가 있을 거야. 선경아! 병원에서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해!”라고 말해 줄  수 밖에는 없었다. 나의 병과는 또 다른 병이고 고통스런 암투병 생활이니 그런 정도의 말 밖에는 도움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친구는 방에서도 걷는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 같았다. 기운이 없어서 많이 쉬어가며 걷기는 해도 병원에서 말한 횟수는 꼭 걷는다고 했다. 친구 혜정과 나는 예전부터 진중하고 맏딸이라 다소 어른스러운 선경이를바른생활 소녀라고 말하곤 했는데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치료받고 음식량도 늘려가던 선경이는 시간이 갈수록 먹고 싶은 고기도 많이는 아니더라도 약간 씩 먹고 있다면서 매운 것이 먹고 싶어서 가족들과 외식하러 가서 자신은 많은 양을 먹지는 못하니 남편 것을 조금씩 얻어먹는다고도 하고 경포호수 쪽으로 바람도 쐬러갔다고 전화도 하고 하더니 이번 초겨울에는 어느 덧 그 길게만 느껴지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지던 6번의 주사도 다 맞았다고 그리고 이제는 약도 먹을 필요가 없다고 너무나 좋아했다.


 


  주사도 고통스러웠지만 원래가 약을 잘 못 먹는 체질인데다 약이 목에 걸리고 써서 약 먹는 것 또한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는데 이젠 주사도 약물치료도 다 끝났고 의사 말이 먹고 싶은 것 먹고 운동하면서 쉬라고 했다고 여간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방인 강릉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오는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번의 주사로 속이 뒤집어 질 것만 같던 고통이 끝나고 잊을 만 하면 다시 주사를 맞아야한다고 하소연하던 그녀에게는 아마도 이 소식이 날아갈 듯 만 했을 것이다. 식사량이 많지 않으니 살이 점점 빠져서 결혼 후 작아져 못 입었던 옷들을 다시 입는다고 공허한 웃음으로 말하던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힘찬 소리를 들었다.


  올 겨울, 전세로 살던 너른 아파트를 줄여서 이사를 하기로 하긴 했지만 이제 자신의 아파트를 마련해 집을 옮기기로 하면서 선경의 생활도 많이 안정을 찾는 것 같았다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자신의 집에서 되찾은 건강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보내기로 했다면서 이제는 예전처럼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지 않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하는 친구 선경의 얘기를 들으며 내게도 따스한 크리스마스가 전달되어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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