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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눈도 동그랗고, 웃는게 참 이뻤던 이 꼬마아이는 엄마아빠의 사랑을 듬뿍받았지요.
아빠는 항상 자기딸이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며,
오토바이를 태우고 동네 이곳저곳을 다 돌아다니며 딸을 자랑하곤했어요.
이 꼬마아이가 4살이 됐을때
친구네집에 놀러가게됐어요.친구네 집에서 아무것도모르고 재밌게 노는동안 꼬마아이는 알지못했습니다. 어리고 어린 자신에게 감당못할 큰 일이 닥치게될 줄을요..
그 날 가족들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친구네집에있던 꼬마아이를 제외하고 엄마 아빠 남동생은 큰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그 이후 꼬마는 오토바이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오토바이를 태워주셨던 아빠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거든요.
꼬마가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 다 큰 소녀가 될 때까지요. 영원히..
엄마는 타박상을 입으셔서 여러군데를 꼬매셔야했습니다.
턱부터 가슴부분,팔까지 많은곳을 꼬맸지요.
갓난아기였던 남동생은 조수석의 엄마품에서 차밖으로 튕겨져 나가 머리가 깨졌었습니다.
동생은 왼쪽뇌를 다치고 오른쪽신경마비가 됐었습니다. 동생은 무조건 재활치료밖엔 없었지요.
제대로 서서 걸을수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동생은 3살 때 또 입원을 해서 물리치료를 받았었습니다.
춘천에서 동생은 더 이상 받을 물리치료가 없어서 강동성심병원 재활클리닉센터로 옮겨
물리치료를 받아야했습니다. 그곳은 말그대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못하는 뇌성마비 아이들이 재활치료를 받는곳이였지요.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동생 때문에 퇴원을 하시고 아픈몸으로 입원해있는 동생을 돌봐야했습니다.그리고 서울로 동생 재활치료를 받기위해 매일을 왔다갔다 하셨지요.
어느 날 밤에,꼬마아이는 열이 펄펄났습니다.너무 뜨겁게 열이나 놀란 엄마는 차마 동생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어서 외할머니께서 저를 데리고 부평의 다른 병원엘 갔습니다.
그때 청천벽력같은 말이 떨어졌지요.
‘백혈병’이라구요.
정말 소설이 아니고는 말이안되는 현실이였습니다.
꼬마아이의 가족은 한순간에 모든게 뒤엎어져버렸으니까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이였습니다.
백혈구가 오히려 감소가되는 병이였죠.
꼬마는 춘천에서 입원을 하게 됐습니다.
입원을 한번하게되면 약30일에서 길면 50일정도 입원을 하곤했는데 꼬마는 그렇게 입,퇴원을 약21번을 했습니다.
그것도 1인 병실만을 썼지요. 화학요법에이어 입,퇴원과 1인병실을 쓰는것만으로 돈은 어마어마하게 깨졌습니다.사람이 아픈데 돈이 대수냐고 하겠지만 한순간 옆에있어야할 남편이 없어지고 홀로 이 모든상황을 감당해야하는 엄마에겐 힘든일이죠.
꼬마의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온 돈으로 꼬마의 병을 고치는데 모두 써야했습니다.
입원을 하고나서 4회정도의 골수검사를 했습니다.
골수검사를 할때에 꼬마는 거의 죽기살기로 했었습니다.
그 작은몸뚱아리가 견디기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것이였으니까요.
그 작은몸을 엎드리면 허리에 마취를 한 후에 주사를 꽂아 피를 뽑아냅니다.
하지만 마취는 단지 허리 살결에만 마취가 될 뿐 뼈 속까지 마취가 될 순 없습니다.
별 소용없는 마취일 뿐이죠.그리고 그곳에 주사를 꽂는데 말이 주사지 모양은 전혀 주사가아닙니다. 대략 5미리정도 되는 두깨의 파이프같은 것을 통과시키는것이죠.
그것을 허리의 뼈 속까지 뚫어서 그 속에서 피를 뽑은후에 빼내는것인데
그 고통은 정말...말로는 표현할 수 가 없습니다.
그 파이프같은 것이 들어가는 순간 온 몸이 굳어버리는 느낌뿐이거든요.
살 결도,
뼈도,
심장도...
그러한 고통을 그 꼬마아이가 견디기에는 너무 가혹한것이였죠.
골수검사를 할 때 의사들이 부모님들은 보지 못하게 합니다.
나가있으라고 하지요. 그 검사자체를 옆에서 보게하는게 어쩜 더 잔인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꼬마는 정말 병원이 떠나가리만큼 미친 듯이 울었습니다.
의사들이 손사례를치며 감당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결국엔 의사들이 ‘엄마 들어오시라고’ 말을하지요.
엄마가 들어와 꼬마옆에서 손을 잡아주면 꼬마는 그때서야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수건을 물고,이가 뭉드러지리만큼 수건을 깨물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엉엉 울며 그 시간을 참아야했습니다.
단지 이로물고있는 수건과 엄마가 잡아주고 있는 손으로 꼬마는 그 순간을 버텨야했죠.
옆에있는 엄마는 할 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딸을 보면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손을 잡아주는것밖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눈물만 흐를뿐이죠..
그중에 또 척수검사를 해야했는데 척수검사는 수면제를 먹고 해야되는것이였습니다.
척수검사는 허리의 뼈와뼈사이에 주사바늘을 넣어서 맑은물을 뽑아낸후에 그곳에 다시 약을 투여하는 검사인데 어른들도 힘들어할만큼 고통이 큰 검사이기에 수면제를 먹고해야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런데 꼬마는 이미 고통에 너무 질려버렸는지 척수검사를 해야하는데 수면제를 먹지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수면제를 먹지않고선 그 고통이 어마어마할텐데 어떻게든 더 이상 아픔을 느끼고 싶지않았던거죠.
한참을 실랑이 끝에 결국 나중엔 수면제를 먹지 않고 척수검사를 하는 일까지 벌어진거죠.
그 쪼그만한게 얼마나 독하던지,...
의사들이 나중엔 ‘졌다 졌어’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꼬마는 이미 그 고통속에서 마음이 딱딱해져 버린걸지도 모릅니다.
꼬마에겐 너무 힘든 현실이니까요.
병원에서 의사들은 꼬마에게 살 수 없을거라고 했습니다.
모두가 안된다고 고개저었죠.
그때마다 꼬마는 의사선생님께 그랬답니다.
하나님이 저 살려주실거라고.
꼬마는 담당의사선생님을 왕자님이라고 불르곤했는데
왕자님도 멋있지만 저를 살려주시는건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이 살려주실거라고.
그래서 백혈구수치가 좀 올라간다 싶으면 의사선생님은 신기해서 연필한자루를 선물로주시고,사탕도 주시고,
백혈구수치가 내려가 꼬마표정도 뚱 해있다싶으면 그래도 사탕하나라도 더주시고..
그렇게 저를 지켜보았습니다.신기하단듯이..
꼬마의 아빠가 돌아가시고 꼬마는 백혈병에걸려 병원에 누워있었을때 친할머니께서 찾아오셨었습니다.
친할머니는 꼬마의 엄마에게 격려를 해주실줄 알았는데 격려가 아니였습니다.
어차피 죽을애한테 왜 돈을 퍼부으냐고.
차라리 그 돈으로 잘살라고. 왜 뻔히 죽을애한테 돈을 쓰냐고 돈 아깝게..
한번의 격려도 없으시고,꼬마에게 한번의 따뜻한 보살핌도 없었습니다.
꼬마의 엄마는 너무나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자기자신을 돌아볼수도 없었습니다.
자기자신이 아픈줄도 모릅니다.
그저 닥쳐있는 한 순간순간들을 모면하는데에만 급급했으니까요.
한 순간에..모든 행복이 사라져버렸고,한순간에 모든 화목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남편이 없어져버렸고..딸은 죽을병에 걸렸고..아들은 몸을 가누질 못합니다.
한 순간에요..
하지만 신은 꼬마와 꼬마의 가족들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꼬마의 엄마는 두 자식을 가누느라 모든 걸 걸었고
꼬마는 차츰차츰 건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꼬마가 9살때까지 병원을 다닌 후에야 그 꼬마아이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습니다.
모든 게 완케된거죠.
재발 가능성이 있어 그 후에 10년을 병원을 다녔지만 더 이상의 재발은 없었습니다.
꼬마의 동생도 어느순간 정상적으로 건강해졌고, 후유증으로 다리를 살짝 쩔뚝거리기는 하지만 모든게 정상인이나 다름없습니다.키도 크고 건실한 남자 아이가 되었죠.
신은 꼬마아이의 가족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세탁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정말 열심히 일을 하십니다.
여자가 일하기에는 너무 벅찬일이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일을 하십니다.
후유증으로 이와 잇몸이 망가져서 치료하는데 몇천만원정도되는 많은 돈을 써야해서
한동안 경제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있습니다.
꼬마는 4살 때 그렇게 아픔을 만나고,아픔을 느끼고,아픔을 참아내고..
16년이 지나서 스무살이라는 성년이 되었습니다.
일찍부터 꼬마는 마음이 딱딱히 굳어져버렸었습니다.
평생을 감사해야 했지만 인간의 마음으로 차라리 그때 죽어버릴걸..왜 날 살렸냐고..그때 나 죽여버리지 왜 살렸냐고.. 라는 못된 교만을 부리기도 했었죠.
하지만 한순간에 왜 불행이 들이닥쳤는지....
왜 이런 시련을 겪게했는지...
이유가 않을까..생각을 하게됬습니다.
내가 이러한 고통속에서 이겨냄으로써 비록 보잘 것 없지만 앞으로 남들에게 많은 용기와 희망과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어떠한 계획이 있음으로써 꼬마였던 제가 그러한 많은것들을 느끼고...배우고...깨달은 것이 아닐까 하고요.
꼬마였던 저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않습니다.
몸도...마음도...영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