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게시판 - 나의 투병 일기, 성공적 투병 사례를 올려주세요!
지난해 2007년 3월중순경 갑자기 식사를 할 때마다 조금만 먹어도 위의
위복부가 팽팽하고 부대끼는 증상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 증상은 통증으로 변해 더 이상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 내가 자주 다니는 회사부근 모 일반내과 의원을 찾았다.
2005년 11월22일 내시경 검사 시에는 약간의 위염 증세만 있고 별 다른
이상이 없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 이였다.
마침 2006년도 정기 내시경검사를 그냥 지나쳐 버려 이 기회에 내시경 검
사를 받을 겸 2007년 4월 3일로 잡았다.
그 후 내시경검사와 조직검사 진단 결과, 증식성 위축성 위염, 거대 점막
주름, 역류성 식도염 등 3가지 진단으로 나왔다.
그 후 2개월 보름동안 위염은 누구나 조금씩 가지고 있기에 의사의 처방
전을 받아 꾸준히 약을 복용하였으나 통증이 가시질 않고 더욱 심함을
느껴, 6월 21일경 삼성의료원을 찾아 내시경검사 결과 위에 진행성 악성
종양(위암)이 심하다는 진단을 받게 되어 병기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있는지 복부 CT촬영을 하기로 하고 위암 진행 종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집으로 귀가를 하는 도중 도저히 위암이라는 것이 믿어지질 않았다.
그동안 건강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자신하면서 살아온 나 역기에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1주일 후 복부CT촬영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지인의 소
개로 곧바로 6월27일 서울 백병원 암센터를 찾아 입원하면서 검진을 받은
결과, 위암 4기로 지금 현재로서는 수술을 할 수가 없으니 항암치료 후 그
결과를 보고 다음 스케줄을 잡아가자는 박사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하늘
이 노랗고 무너지는 것 같아 도저히 납득할 수도 없어 그냥 받아드릴 수
가 없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이다.
7월 1일부터 항암치료에 들어간다는 스케줄이 잡혔다.
나는 또다시 받아 드릴수가 없어 다른 병원, 서울대학병원을 찾았고 진단
결과 역시 백병원 진단과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제 3곳의 종합병원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나니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져서 인지 내가 왜 이러한 병을 안고 살아야하는지 이제 분노가 치오
르는 것이다.
위암4기라면 말기가 아닌가?
죽음으로 가는 어둡고 컴컴한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대열의 무리 속에
내가 서 있단 말인가? 그 속에 들어가면 영영 나오지 못한다는데 어찌하
란 말인가.
그동안 60여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최선
을 다해 착실하게 살아 왔건만, 또한 건강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하면
서 살아온 나이기에 이 진단 결과를 도저히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
그동안 95kg으로 과체중인 나로서 10Kg 줄이는데 2년이 넘게 걸렸는데
위암판정 후 2개월 사이에 17Kg나 빠진 나의 모습을 바라보니 눈물이
앞선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다.
식욕은 갈수록 떨어지고 활발하게 생활하던 나였기에 멈추어버린 생활
패턴이 삶의 의욕을 잃어가는 나 자신의 모습이 너무 처량하기만 했다.
이러기에 많은 환우들이 견뎌내지 못하고 삶의 희망을 포기하여 우울증과
기타 병마의 합병증으로 세상을 저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나 역시 그런 쪽으로 다름 질치고 있음을 느낄 때 내 옆에서 남편을 위해
아빠를 위해 주야로 최선을 다 해 간병하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
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배갯 깃을 적시곤 했다.
평소에 그 누가 나에게 "몇 살까지 살고 싶어?" 라고 물으면 농담이라도
"난 오래살고 싶지는 않지만 살아온 만큼만 더 살겠노라“고 입버릇처럼
자신 있게 뇌까려 오던 나였기에 너무나 억울한 생각이 들어 잠이 오질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로 말려들 때 마다 섬기는 교회의 담당
목사님과 장로님, 많은 교우들, 그리고 친구들이 찾아와 위로로 나의 마음
을 추슬러 주신다.
나의 항암치료는 3일 동안 계속 52시간을 투약하는 치료법이기에 1~2차
항암치료 때는 너무나 힘이 들고 고통스러웠다. 항암치료 기간 후에 찾아
오는 각종 항암 부작용으로 온 가족이 비상이 걸린다. 정성껏 마련한 음식
을 제대로 섭취를 못하고 음식만 보며 가족들에게 짜증만 부리니 가족들
이 무슨 죄인가.
이러면 안 돼지 하면서도 나 자신을 억제 할 수가 없었다. 밤마다 몰려오
는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나 자신의 처량함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때
마다 나는 강한 분노를 뇌까려본다.
"그냥 이런 병으로 삶을 포기 할 수는 없어, 그래도 그동안 착하게 살아왔
는데 억울해서도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아!“ 라고..
그동안 많은 선배 환우들이 암과 투병생활을 하면서 이겨낸 경험담을 실
은 책으로 읽어내려 가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은 3차
치료부터다.
내 나이 고작 62세밖에 안됐는데 한국남성의 평균수명도 못살고 죽을
수는 없다는 억울함과 날마다 수심에 쌓여있는 사랑하는 가족들 때문에
나의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내일 이 세상을 하직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선배 환우들의 모습처럼 최선을 다 해 보겠노라고..
나는 나의 마음을 서서히 다짐해 본다.
첫째, 병원과 의사선생님을 믿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다.
둘째,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도움을 최소한으로 받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해결한다.
셋째,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나 스스로 나의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넷째,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나의 사고방식을 바꾼다.
나는 이러한 다짐 속에서 이를 악 물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활동을 하
기 시작했다.
그동안 외출금지와 자리에 누워 지내던 생활 습관을 3차후에는 몸 상태가
조금만이라도 좋으면 자리를 박차고 외출을 한다.
환자라고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그 많던 친구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디서나 "암 환자"라는 따돌림을 받는다는 선입견 때문에 그들을 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때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밀려오는 우울함이다. 그때
마다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노력한다.
직장인인 나로서 현재 병가 상태지만 외출을 하면 일단 회사로 나간다.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4~5시간을 보내고 직원들과 어울려 식사를 같이
하게 되니 식사량도 현저하게 늘고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
현재로서는 생선회와 육회, 생 해삼물류는 절대로 입에 대지 않고 그 외에
먹고 싶은 추어탕, 보신탕, 삼계탕, 족발, 보쌈, 통닭, 장어 등등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어둔다. 그러나 많이 먹지는 못하고 조금씩 자주 먹는다.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 현저하게 떨어지는 체력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잘 먹어서 체력을 보강 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암세포란 놈은 굶으면 더 활개를 치기 때문에 악착같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체력을 유지하여 그놈의 암 세포와 싸워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서로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웃기도 하고 당구, 볼링, 탁구를 치며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고궁이나 집 뒷산을 걷기도 하고 가족들과 공연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만든다.
친구를 만나러 갈 때는 승용차로 또는 버스, 때로는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을 이용한다. 이렇게 지하철 계단을 걸어 오르내리기도 하고 수백 미터를
걸어가며 부족한 운동을 보충하기도 한다.
때로는 주일에 한번은 가족들과 외식을 하면서 아내와 자녀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그동안 나를 병간호하느라 쌓인 스트레스와 가족들의 피로
를 풀어 주기도 한다.
그 결과 항암치료 3차 이후 11차 치료를 받기까지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왔다.
3일간 항암치료를 받은 후 2~3일지나면 1.2차 때보다 훨씬 회복이 빨라
식사량이 많아지고 맛도 빨리 돌아온다. 매끼마다 집에서나 식당에서 밥
한 그릇을 거의 다 비울정도다. 그로 인하여 항암치료 후 회복이 빨라짐을
현저하게 느낄 수가 있다.
때로는 집에서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아내는 쉬게 하고 내 스스
로가 조리를 해서 아내와 자녀들과 같이 맛나게 먹기도 한다.
내가 주로 조리하는 음식을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입 맛 없을 때 오겹살 김치조림, 때로는 고등어 김치조림도 해먹기도 한
다.
또한 잡탕라면이다. 라면에다 수프를 반만 넣고 고추장을 약간 풀어 굴,
조갯살, 참치통조림, 감자, 양파, 대파, 계란 등을 넣어 조리하면 말 그대
로 잡탕라면이 된다. 여기서 부재료를 많이 넣는 것은 최소한의 영양분 섭
취를 위해서다.
특히 항암주사 후 속이 미식거리는 부작용이 올 때 나는 미역국에다 굴,
또는 소고기를 갈아 넣고 떡 첨(또는 수제비)을 넣어 끓어 먹으면 한 그릇
을 다 먹을 수가 있다. 수제비를 넣으면 우리 집에서 “수미탕”이라고 통한
다.
갈비탕 국물에도 갈비고기를 잘게 다져 떡 첨(또는 수제비)과 같이 넣고,
다른 야채를 겻 들여 넣어 끓여 먹기도 한다. 이것은 “수갈탕”이다
여기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은 시원한 무우 동치미국과 생오이를 겻 들여
먹으면 속이 미식 거리는 것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새참으로 중간에 주로 삶은 고구마와 바나나를 우유에 갈아 약간
따뜻하게 해서 과일 아니면 떡(인절미, 검정콩을 넣어 만든 떡 종류 등),
건 과류를 겻들 여 꼭 먹고 있다.
외출 할 때는 갈아서 보온병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마신다. 영양 보충을
위해서다.
또 하나의 변화는, 3차 항암치료 후부터 11차 항암치료 때까지 항암치료
한번 받으려면 4번 병원에 가야한다. 흉부X레이 촬영, 혈액검사를 위한
채혈시와 주치의 외래진료 받으려 갈 때, 항암치료 받으러 갈 때, 또 주사
바늘 뽑으러 갈 때 등으로, 그동안 단 한번도 보호자 동행 없이 나 스스로
혼자 다닐 정도로 체력이 받혀주는 것이다. 이제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 보
다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그 덕분에 작년 투병 후 가족들과 2번이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한번은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아빠를 위해 휴가를 같은 기간으로 맞춤)온
가족이 4박 5일 일정으로 강원도 정선 동강 계곡을 다녀오고,
또 한 번은 11월 중순경에는 아내와 단둘이서 나 스스로 운전을 하며
서울에서 전라도 선운사, 내장산, 변산반도 등 3박4일 일정으로 단풍여행
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렇게 한번 마음을 바꿔 먹은 것이 절망과 실의에 빠진 나에게 이러한
큰 변화가 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로인해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이
더욱 발동하게 만든다.
그 결과 주치의사도 3차, 6차, 9차 후 CT촬영 결과가 많이 좋아지고 있어
나에게 항암약재가 잘 받고 있다고 12차까지 같은 항암재로 계속하자고
귀띔을 해준다.
그 말씀에 나는 너무 신이 났다. 다 낳은 기분이다.
12차 항암치료 후 수술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계속 항암치료를 더 해야
할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 결과는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라고 생각하
기 때문이다.
요즈음 항암치료 후 나를 지치게 만들려고 드는 항암 부작용은 나하고 상
관이 없다고 아예 무시해 버리고 지낸다. 왜냐하면 조금만 참으면 되니까.
2주내지 3주에 한번 받는 항암치료도 나는 암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건강을 좀 더 다지기위해 보약 주사를 맞으려 병원에 간다는 마음
으로 치료에 임하기 때문에 한결 수월하고 마음이 편안하다.
지금은 거의 암 진단을 받기전의 생활로 찾아가는 모습으로 착각 할 때가
많다. 만나는 지인들도 환자취급을 해주지 않을 정도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초초한 마음과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집착 할 수는 없다.
나는 이 순간에도 “내일은 어떠한 즐거움으로 나의 하루를 즐겁게 보낼
까?” 하는 생각이 나의 우선순위이다.
내일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외식을 한 후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바비 맥퍼린” 내한공연을 관람하기로 이미 예매를 해 놓은 상태다.
나는 내일도 모래의 나의 하루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멈추지 않고 계속
최선의 노력을 경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암으로 투병중인 우리 환우님들에게 좀 어려 우시겠지만
해 낼 수 있다는 긍정적 희망을 갖고 내일의 즐거움을 위해 최선을 다해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기를 당부 하고 싶다.
2008년 1월 24일